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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세상

독립공원을 걷다


지난 토요일에 독립공원을 갔었습니다. 독립공원은 이시웍스가 위치한 독립문역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데
그 간 전철을 타러 독립문에만 가 보고 서대문형무소가 위치한 곳은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이 무심함. -.-;;
이시웍스는 종로에 위치해 있지만 서대문과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모처럼 비도 개고(사실 장마라곤
하지만 장마의 의미가 바뀌었는지 장마 같지 않은 날 ^^;;) sigma apo 30-70렌즈에 세상 구경도 시켜줄겸
독립공원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독립문역 지하철역에선 채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한성과학고등학교쪽에서 서대문 형무소역사관으로 가는 길입니다. 양쪽으로 여름의 기운을 만끽하고 있는
나무의 풍성한 그늘 아래를 지나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나옵니다. 친구들과 함께 와도 괜찮을 길같더군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독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역사관앞에는 많은 학생들이 늘어 서 있더군요. 스카우트단에서도 오고 일반 학생들도 많이 오더군요.
아이손을 잡은 어머님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예상외로 많은 학생들 덕에 줄은 섰지만 학생들이
역사관을 찾아온 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어떤 안도감이 자못 생기더군요.


어른 입장료 1.500원


임시정부하면 상해임시정부를 많이 들어서인지 상해에만 있는 줄 알았었는데 이렇게 멀리 움직였더군요.
마치 마오쩌뚱의 대장정을 보는 듯 합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렇게 이국땅에서 임시정부를 세워
대외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국채도 발행해서 군자금도 모으고 해외교포들을 통해서도 말이죠.


고 함석헌님[, 1901.3.13~1989.2.4]의 시입니다. 평생을 항일과 반독재에 앞장서신 큰 어른이시죠.
입구왼편에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물으면 나의 소원은 독립이요. 두 번째 소원은 무엇이냐
물으면 두 번째 나의 소원도 독립이요. 세번째 소원은 무엇이냐 물어도 내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요."
라는 글이 붙어 있습니다. 책에서도 보고 또 가끔 인용된 글을 보았던 감흥과는 다른 뭉클함이 일더군요.


멀리 태극기가 붉은 벽돌에 걸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보이는 저 태극기가 참 고맙더군요.


어둠침침한 이 곳에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지나가셨을지 가슴이 아파오내요.


한 평남짓한 독방입니다. 유관순열사 께서 이런 곳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목놓아 외치셨겠지요.


유리창 너머로 아스라이 새로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가 보입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분들이 지금이 대한민국을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감개무량하더군요.


지금은 자유가 오고 갑니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말이죠.



평화로이 잔디를 깎고 있는 사람들의 뒷 편으로 서대문 형무소의 배경을 보며 잠시 사색에 잠겨보았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걸어놓을 수 있습니다.
독립공원을 돌면서 몇 번이나 가슴이 울컥거리던지 안타까움만 베어들었습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
대한민국, 태극기 이런 것들이 갑자기 소중해 지더군요.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말이죠.



나무들은 이렇게 평화로이 햇볕을 받고 있습니다. 잎이 지고 새로운 잎을 나게 하고 그렇게 새로운 생명들은
햇볕을 받아 키워 나갑니다.


독립투사들이 교수형을 당하던 사형장건물입니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나무 이름이 "통곡의 미류나무"라고 합니다. 그 뒷 건물이 사형장이지요. 
마지막 처형장으로 가던 독립투사분들이 저 나무를 부여잡고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저 나무는 그 모든 걸 보았겟지요.



서대문형무소를 나오면서 바라보았습니다.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 박사님의 동상입니다. 독립문 옆에 서 계시죠.




저만치 독립문이 보입니다.


독립회관터인데 서대문형무소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더군요.
일제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독립에 대한 염원을 아예 싹부터 없애겠다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독립회관 터(獨立會館址)

[여기 영천동 일원은 독립회관(18961910)이 자리하였던 터로 원래 모화관(14071895) 터였다.]

  현재 영천동 69번지, 독립문 남쪽에는 독립관(獨立館)이 있었다.

  독립관은 민간단체인 독립협회가 영은문을 헐어내고 나서 건양 원년(1896)에 모화관(慕華館)을 개수한 뒤에 이 같이 명명하고 이 건물을 독립협회의 본부로 삼았다. 그러나 이 건물은 일제 때 헐렸다.

  모화관은 조선 초에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빈관(迎賓館서)이자 귀국시에는 전송하는 곳으로 태종 7년(1407)에 건립하여 모화루(慕華樓)라고 하였는데 세종 때 개축 후에 모화관으로 칭하였다.  그 이듬해 건물 남쪽에 큰 연못을 파고 연(蓮)을 심었을 뿐 아니라 고기를 넣어 길러 백성들의 원성을 자아냈다. 또한 이 부근은 넓은 공한지여서 군사의 조련 및 무과 시험장소로 쓰였다.

  조선 500년간 모화관은 중국 사신의 숙소라기 보다 영접이나 전송하던 곳으로 이용되다가 청일전쟁 후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에 가뭄이 들면 이 곳과 창덕궁 후원, 경회루에서 도룡뇽을 물독에 넣고 어린이 수십명이 버드나무가지로 물독을 치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비를 빌었다.

☞ 찾아가기

․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건너 직진 후 우리은행 앞 인도변

출처 : 서울특별시, 2004, 역사 문화 유적의 현장을 찾아


독립공원 []
요약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공원.
본문

총면적 182,683㎡이다. 서울구치소가 있던 자리로,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자 감옥과 사형장·담장·망루 등을 사적으로 보존하고 일대를 공원으로 꾸며 1992년 8월 15일 문을 열었다. 주요 건물로는 독립관독립문, 영은문 기초, 옥사 7동, 사형장 1동, 나병사, 보안과 청사, 담장과 망루 등이 있으며, 기념물로는 독립선언기념탑·순국선열추념탑·시계탑 등이 있다.

이곳은 본래 1907년 경성감옥이 세워진 후 80년간 우리 나라 현대사의 격동기와 민족의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특히 일제가 많은 애국지사를 투옥하여 고문하고 사형시킨 장소로 유명하다. 약 5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는데, 수용인원이 점차 늘자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새로 짓고 1912년 9월 3일 서대문감옥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5년 광복 후에는 서울형무소,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여러 차례 명칭이 바뀌었다.

2001년 현재 옥사 7개 동 중 3개 동과 사형장은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고, 독립문과 영은문 기초도 각각 사적 제32호와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무소 내에는 유관순 열사가 고문받다가 순국한 여자 지하감옥이 있으며, 사형장 후문 언덕에는 시체보관소로 보이는 굴이 남아 있다. 독립관은 추모의 장 4실, 역사의 장 3실, 체험의 장 2실 등 모두 9개의 전시실에 각종 감옥 관련자료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독립관터 바로 맞은 편 골목에 위치한 이시웍스 건물입니다. 오늘따라 붉은색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군요.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들이 역사관에서 소란스럽다는 것. 아이들만 왔다면 제가 타이를 수 있겠는데
어른들과 같이 왔는데 그 분들이 신경을 쓰지 않으시더군요. 어떤 아주머니께서는 아이에게 역사관에 있는
각종 기념물들을 보고 사연을 말씀 하시는데 그 분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웃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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